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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예뻐야 해 <오혜나>

살면서 선택의 순간은 언제나 오기 마련이고, 누구든 그 선택의 순간에 고민하고 망설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떤 선택이 됐건 선택 이후에는 물 건너 간, 내 손을 떠난, 이미 끝나버린 일들에 대해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그러다보니 누구나 선택에 대한 기준이 있는데, 나는 늘 그 기준이 분명하다. 예쁜가, 그렇지 않은가. 


아이키도를 해봐. 어깨도 덜 결리고 불면증도 사라져.”

 

친구처럼 알고 지내던 도장장님의 농담같기도 한, 시큰둥한 권유에 선듯 응했던 것은 도장장님의 권유에서 전혀 적극적인 영업의도가 느껴지지 않아서 였는지도 모른다. 아이키도가 뭔지도 모르고, 여타 비슷한 다른 무술들과의 차이점이 뭔지도 몰랐던 나는 아이키도는 발을 쓰지 않는다기에 더 가벼운 마음으로 응했던 듯도 싶다. 보통의 여성들이 하는, 힘주어 몸 늘이는 정적인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던 터라 더 마음이 움직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 무덤덤한 권유가 나를 여기까지 이끌 줄은. 시쳇말로 도장장님의 큰 그림 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첫 수련을 하던날, 도장장님이 빌려주는 하얀 도복을 입었다. 띠를 질끈 동여매고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은 좀 웃겼다. 내게 맞지 않는 크고 헐렁한 다른 사람의 도복. 평소 몸의 쉐입을 중요시 생각해서 날씬해 보이도록 옷을 입는 내게 이건 뭐 어설프기 그지 없었다.

 

..안 예뻐. ..폼 안나..’

 

입을 삐죽 내밀며 이렇게 중얼거렸던 듯싶다. 어쩌면 안 예쁘기만 해봐라...’하고 별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게 뭐든 간에.

 

헐렁한 도복의 크기만큼이나 어설픈 준비운동을 끝내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곧이어 체술 시범을 보이기 위해서 도장장님이 몸을 움직이는 순간.

 

모든 것은 끝이 났다.

 

갑옷같이 각이 잡힌 탄탄한 도복이 보여주는 단단한 느낌의 상체의 움직임. 꼿꼿하게 허리를 펴 상대를 제어하는 도도함. 먼저 달려들지 않고 상대가 움직이는 동시에 같이 움직이며 피하는 듯 상대를 낚아채는, 낭창하게 움직이되 정확히 멈추는 팔. 부드럽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하체. 절대로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는 발은 매끄럽게 도장 바닥을 쓸었다. 모든 동작이 끝난 후에 반 박자 늦게 펄럭이며 따라오는 하카마 자락을 기다리며 멈추어 가다듬는 자세 나중에서야 이것을 잔심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는 이 무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내게 분명히 보여주었다. 힘을 절제하는 정신의 작용.

 

....’

 

조용히 되뇌였다.

 

예쁜 것을 대하는 보통의 내 모습이라면 어머!’ 하고 탄성을 올리며 박수라도 쳤겠지만 아이키도는 그런 내 감정까지 압도하고 있었다.

 

선택은 우스운 일이었다. 내가 감히 아이키도를 선택하다니. 뜻하지 않는 순간에 아이키도는 운명처럼 왔고, 만났다. 어쩌면 아이키도가 나를 받아주어서 지금까지의 연을 이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혹자는 무술을 이렇게까지 인격화 하나 싶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과 철학의 집합체는 분명히 모습을 갖추고 있고 살아 움직인다고 나는 믿는다.


잘 하고 싶어서, 아이키도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일주일에 세 번은 분당으로 두 번은 수원으로 달렸던 날들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이키도 앞에서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초반에는 빨리 승단하겠다고 조바심 쳤지만 수련을 거듭하며 빨리 승단하는 것이 중요치 않다는 것을 배우며 여유도 늘었다. 도장에 들어 올 때는 모든 문 밖에 밖에서의 근심은 두고 들어오라는 도장장님의 말을 아이키도의 동작으로 몸에 익혔다. 그렇게 조금씩 나는 크고 있다. 그리고 계속 아이키도를 이어갈 것이다.

 

뭐든, 예쁘게.


2021, 8, 31

<분당도장 오혜나 수련후기 >